단디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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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최재원
출판사항문학과지성사, 발행일:2026/09/21
형태사항p.148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204578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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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보고 또 보고 단디 봐라”


바라보기, 뜯어보기, 톺아보기, 들여다보기

그리고 돌아보기


집요한 응시 끝에 마침내 탄생하는 웜홀

언어라는 부싯돌로 세계의 임계를 뚫어나가는

시인 최재원의 세번째 시집


2021년 김수영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최재원의 세번째 시집 『단디 봐라』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41번으로 출간되었다. “비속함을 마다 않는 거친 힘”(시인 이수명) “자기 식으로 쌓아 올린 독창적인 벽돌집”(시인 허연)이라는 평을 증명하듯, 최재원의 시는 어떤 질서에도 온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새로운 중력을 가지고 동시대 문학장에 등장했다. 이후 펼쳐낸 두번째 시집 『백합의 지옥』(민음사, 2024)에서 역시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시도하며 “시 장르 법칙의 암묵적인 교환관계를 파투”(시인 김혜순, ‘추천의 글’)낸 시인은, 한 손에는 날것의 언어를, 한 손에는 가변적 형식을 움켜쥐고 이번 시집 『단디 봐라』에서 동사 ‘보다’의 자기장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다. 익숙한 세계를 새로이 바라보게 하는 한편,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끝내 보게 만드는 59편의 시를 총 5장에 나누어 묶었다.

시집을 읽기 전,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요구 사항은 오로지 ‘단디’ 보는 것이다. ‘단단히’의 경상도 방언인 ‘단디’에는 “더 단단히, 더 자세히, 더 확실히, 더 똑바로, 더 잘…… 등 복잡다단한 뜻이 담겨 있”(박소란 발문, 「보고 또 보자, 비록 끝이라 해도」)다. 여기서 어떤 ‘단디’와 함께 시집 속을 탐험할 것인가.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다.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는 이 시집을 무심코 펼쳐본 바로 그 순간, 이 낯선 시집-행성으로의 낙하는 이미 시작되었다.


시인은 누차 이야기한다. “보소 단디 보소”. 이 정직한 행위로써 세계의 기존 질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신실한 믿음을 시인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다는 것, 그것은 곧 세계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과정이자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읽고 쓰는 시는 무언가를 오래 바라본, 헤아린 흔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 보고 오래 듣고 오래 냄새 맡는, 꿋꿋하고 끈질긴 감각적 발휘.

―박소란 발문, 「보고 또 보자, 비록 끝이라 해도」


“햇빛이 드는 투명한 핫 핑크에 단 한 방울 울트라마린”

끈질긴 묘사로 피워낸 그리움의 불씨


내 첫

해 더 더 오래

오래 바라보면 차차

큰 방울 작은 방울 파랗게 번져

푸른 눈사람 됐다 커다란 원 됐다

똑 닮은 두 방울 똑 닮은 세 방울

닿았다 섞였다 삼켰다 풀려 나가

―「눈에 가둔」 부분


시집 곳곳에서 보는 행위는 계속 등장한다. “하루 종일/바라보”(「고동」)고, “보고 또 보고”(「단디 봐라」) “네 뒷모습이/얼굴이 될 때까지 그 얼굴이/사라질 때까지”(「첫 공」) 본다. 이때의 화자는 놀이터에 버려진 “진흙공”(「진흙공들의 탄생」)이거나, 작은 것의 생사를 기민하게 알아챌 수 없는 “무능한 눈”(「걔와 개」)을 가졌거나, 도저히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독적으로 밝은”(「물물교환」) 환경에 놓여 있다. 즉, 자신의 힘으로 바라보는 대상에 닿을 수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응시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데서 오는 단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그림자 한 점 없는” “그대”(「봄비」, p. 63)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편들은 희한하게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유년의 감각을 환기한다.

모든 것이 생경했던 유년을 떠올려보자. 신기하게 생긴 곤충들(「동거」), 알쏭달쏭한 시간의 리듬(「감가삼각」),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나는 해의 테두리(「눈에 가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유년도 함께 떠올려보자. 깜깜한 밤, 적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보고 또 보았던 벽지(「12층의 헝가리안 댄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들과 무심히 내리는 비(「봄비」, p. 63). 시끌벅적한 세상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지독히 혼자였던 날들. 어쩌면 시인은 바로 그때의 감각,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감각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띄어쓰기에 따라, 뉘앙스에 따라, 맥락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언어’를 통해서는 한 개인이 보고 느낀 바를 타인에게 완벽히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용 가능한 언어를 총동원해 세계를 더듬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시인은 이어간다. 색채, 향기, 작은 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하려는 이 끈질긴 시도는 마침내 ‘그리움’이라는 불을 피워내고, 시집을 읽는 이들을 저마다의 기억 속으로 순간 이동시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찾아지는 말들로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깜깜한 언어의 우주,

말장난과 끝말잇기가 만들어낸 별자리


시집을 읽다 보면, 특이한 제목의 시들이 눈에 띈다. “재 건 축”처럼 “각 음절을 의도적으로 띄어 표기하”여 “익숙한 단어를 전과 다른 감각과 의미로 마주하게” 하거나, “숨 밖 옥 쥘”처럼 “‘숨바꼭질’의 과정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음절 각각의 뜻을 가늠하게”(박소란 발문, 「보고 또 보자, 비록 끝이라 해도」) 하는 제목들 말이다. 이러한 말놀이는 제목뿐만 아니라, 시편 곳곳에 산재해 있다. “새/하얀 사전/밖 피어난 뻔/뻔 한 숨 소리/를 들었노라/고 들었노라고/들었노라 들었노라/들었노라/고 기침만/이 쉼표가 되어”(「겨울은」)처럼 마치 끝말잇기를 하는 듯한 구절에는 ‘뻔뻔한 숨’ ‘뻔한 숨’ ‘뻔뻔한 한숨’ 등 여러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들었노라”는 텅 빈, 광활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띄어쓰기와 행갈이 그리고 반복을 통해 한 편의 시가 가질 수 있는 풍경과 감각은 무한히 증폭된다.

한편 이러한 의도적인 겹침과 반복 외에도 하나의 동사가 마치 변검술처럼 모습을 바꾸는 광경도 목격된다. 엄마가 없는 동안 동생들을 돌보고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불 앞에선 엄마는 ‘나’에게 떡국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며, “단디 봐라”라고 말한다. 박소란 시인이 발문에서 짚어주었듯, 이러한 행위는 “단순 레시피”의 전수라기보다 “생존 매뉴얼”을 각인시키는 것에 가깝다. ‘단디’ 보라는 말이 잘 지켜본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기억하고, 유념하고, 간직하라는 말로 변신하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도약한다.


종종 정문을 두고 잠긴 뒷문 담을 넘었다. 치마가 올라가는 기분이 좋았던 걸까. 모습을 드러내고 생긴 대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든든한 다리. 담을. 넘는다. 발각된다. 맞는다. 묘한 쾌감. [……]

제군들은. 다리몽둥이가 부러져야 정신을 차릴 텐가? 그래야 음식 따위를 장만하여 먹을 수 있게 상 위에 벌일텐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 법식 따위를 갖출 텐가?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가다듬어 되찾을 텐가? 정신 똑바로 차려.

……흐흐흐 ……으하하하하!

동사의 가능성. [……] 차리다. 장만하다. 벌이다. 갖추다. 되찾다. 아 신비로워.

―「역전극」 부분


위 시편 속에서 ‘나’는 담을 넘다 발각되어 누군가에게 꾸중을 듣는 중이다. 여기서 ‘나’가 집중하는 것은 꾸중의 내용이 아니라, 물음표 앞에 위치한 동사다. ‘정신을 차리다?차리다?장만하다?음식을 장만하다?장만하다?갖추다?법식 따위를 갖추다’처럼, 목적어를 버린 동사가 혼자 살아남아 새로운 뜻을 담고, 또 새로운 목적어를 앞에 세우는 연쇄를 발견한 ‘나’는 설교와 꾸중에 아랑곳하지 않고 “……흐흐흐 ……으하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처럼 “동사의 가능성”은 정형화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주의 가능성’이자, 익숙한 질서를 뒤집는 ‘역전의 가능성’이다. 시인이 언어의 표층을 뚫고 들어가 발견한 이 언어의 “신비”는 세속으로 “조금씩 끌려 내려가”는 우리에게 달린 “실을 끊”게 해주고, “별 따서 내려”(「지지 않는 밤을 향해」)가고픈 꿈을 지속하게 한다.

숨 가쁘게 발견과 발명을 이어가며 고조되던 탐험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점차 소강한다. 단단해지고 싶었던 ‘흙공’은 아파트 공사장에서 쏟아지는 시멘트로 몸을 던지고, 오지 않는 ‘그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화자는 마침내 자신의 집을 지었으며, 봄비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유희와 서정이 소용돌이치고, 익살과 슬픔이 벼락처럼 내리는 이 시집-행성의 탐험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단디 봐라”라는 말로 탐험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을 울렸던 시인은 이제 시집의 끝에서 지친 “제군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선 “해 보러 밖으로 나가자/그게 끝이라 해도/우리 여기 불을 지피자”(「같은 노랠 부르고 또 부르네」)라는 마지막 전언을 남기고서 홀연히 사라진다. 앞으로 펼쳐질 무수한 모험과 고난 속에서도 이 시대를 사는 제군들의 마음속에서 그 말이 오래오래 울려 퍼지길 바라는 염원을 꾹꾹 담아.

작가 소개

최재원

2021년 김수영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백합의 지옥』 등이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1장

뱅 | 숨 밖 옥 쥘 | 감가삼각 | 어제는 |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 12층의 헝가리안 댄스 | 간편 조리 | 동거 | 걔와 개 | 겨울은 | 봄비


2장

모래공의 탄생 | 진흙공들의 탄생 | 첫 공 | 해 질 녘 그림 | 밤의 목련은 젖은 손가락 깊이 더 깊이 게워낸다 | 재 건 축 | 물물교환 | 틈 | 삼겹살 도둑놈 | 은혜 갚는 개미 | 그래도 지구는 돈다 | 무지개새 | 먼 곳에서의 사랑 | 눈에 가둔 | 봄비


3장

얼음땡 | 시 | 시 | 시 | 포 도 | 알 | 개구리 눈사람 | 쇠팽이의 노래 | 고동 | 디올의 별 | 나는 그의 장례식에 매일 참례한다 | 가래 사레 딸꾹질 그리고 칼과 케이크의 밤 | 같이 가 | 봄비


4장

역전극 | 너의 사계는 여름 | 전야 | 시 | 단디 봐라 | 시 | 어머니의 혀들 | 19층 | 탭댄스 | 리콘 | 같은 노랠 부르고 또 부르네 | 봄봄


5장

흙공 | 해 변 | 하마의 얼굴을 한 이성 | 밤의 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지지 않는 밤을 향해 |

봄비


발문

보고 또 보자, 비록 끝이라 해도·박소란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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