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위대한 인간 서사의 원형이자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인 대장정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남긴 위대한 대서사시다.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일리아스』와 더불어 성경,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버금가는 위대한 서양 정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뒷세이아』다.”라고 평한 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의 말은 호메로스가 남긴 걸작이 가진 문학적 위상을 실감하게 해 준다. 보르헤스는 무한한 정황들과 무한한 변화를 가진 어떤 무한한 시간이 있다고 상정하면 『오뒷세이아』가 쓰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비롯해 수많은 서양의 주요 문학 작품에 영향을 끼친 이유도 바로 『오뒷세이아』가 우리의 근원적인 방황과 귀향이라는 주제를 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뒷세이아』에서 다루는 기나긴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고난이며 안식을 찾아가는 긴 순례이기도 하다. 『일리아스』에서는 첫 행부터 주인공인 아킬레우스 이름이 등장하는 반면, 『오뒷세이아』에서는 신들이 그의 귀향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야 겨우 오뒷세우스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작품의 제목인 『오뒷세이아』가 ‘오뒷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뒷세우스가 뉨페(요정) 칼륍소에게 오랫동안 붙잡혀 있다가 신의 명령으로 풀려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칼륍소라는 이름에는 ‘감추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의 존재와 정체성이 세상으로부터 지워져 가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치라 할 수 있다.
‘남자’라는 말로 가려져 있던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21행까지의 거리는 이 작품 전체의 흐름을 미리 암시하는 전조다. 『오뒷세이아』는 이름을 잃은 ‘남자’가 자기의 이름 ‘오뒷세우스’를 되찾아 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고난은 자기 이름을 감추고, 개성을 지우며,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방황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오뒷세이아』가 단순한 해양 모험물이 아니라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품은 고전으로 남은 까닭도 바로 우리 근원에 맞닿아 있는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거친 영웅이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오뒷세우스’가 한 남자의 이름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랍어 원전의 신화적 비극미를 충실하게 재현한
고전학자 서울대 김헌 교수의 완역
『오뒷세이아』의 문학적 가치와 상상력을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이 서양 고전을 대표하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회자하는 이유는 작품 자체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주인공인 오뒷세우스가 겪는 수많은 모험과 고난은 끊임없이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뒷세이아』를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 <오디세이>를 제작한 것이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를 비롯한 여러 화가가 이 작품을 주제로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원전의 깊이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번역이 필수다. 역자가 2004년 처음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번역을 시작한 이래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인 22년이란 기간이 필요했던 이유도 좀 더 고증에 철저한 판본을 선보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 때문이다.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의 의도에 따라 고유한 운율에 맞춰 단어를 배치하다 보니 일반적인 어순에서 벗어나는 도치된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한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를 여러 행에 걸쳐 배치하기도 한다. 그리스어가 비교적 자유로운 어순을 허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은 영어처럼 어순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언어들보다 한결 그리스어 원문의 느낌을 살리는 데 유리하다.
역자는 이런 그리스어와 한국어의 특징과 장점을 모두 살려 번역했다. 일반적인 평서문의 경우에는 쉽게 읽히지만 호메로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장면을 생생히 재현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 도치형 문장은 다소 낯설게 읽히지만 원문이 이미지를 그려 내는 방식에 가장 부합한 형태이다. 또한 『오뒷세이아』를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서사시로서의 리듬감을 좀 더 제대로 구현했다는 장점이 있다.
횡격막으로 생각하며 담즙이 치솟는 고대 그리스인들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태곳적 세계관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을 그대로 번역해 생생히 전달한다는 점이다. 다른 『오뒷세이아』 판본에서 지혜, 분별력, 정신, 헤아림 등으로 번역한 그리스어 ‘프레네스’라는 단어를 본서에서는 본뜻 그대로 ‘횡격막’이라고 표현했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이지만, 이를 통해 호메로스의 인간이 우리와 얼마나 달랐는지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횡격막을 쓴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지적 활동을 할 때 “머리를 쓴다”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머리를 쓴다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횡격막을 쓴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심장을 ‘에토르’, ‘케르’, ‘크라디에’라는 세 가지로 구분했는데, 역자는 이를 각각 ‘심장’, ‘심부’, ‘염통’이라고 번역했다. 이 역시 감정적, 정서적 기능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치환하지 않고 독자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 셈이다. 그리스인들은 화가 치밀 때 ‘담즙’이라는 생리적 물질로 표현했는데 이것 역시 분노나 노여움으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의 뜻을 그대로 사용했다. 역자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행여 소녀가 마음속으로 분노할까 봐”라고 평이하면서도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번역 대신, “행여 소녀가 횡격막에 담즙이 솟구칠까 봐”라는 식으로 낯설게 하기를 시도했다. 이와 같은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표현은 기존의 번역과 전혀 다른,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해풍과 청동 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새로운 『오뒷세이아』를 만나게 해 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호메로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 문학이자 서사시의 원형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지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두 작품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역사, 철학과 윤리를 융합한 서사문학의 정점이자,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플라톤은 그를 “모든 그리스인의 스승”이라 불렀고, 단테는 “모든 시인의 왕”이라 극찬했으며,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은 문학적 권위와 상상력의 대명사로 이어져 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초등교육 교재로도 사용될 만큼 문학적 깊이와 윤리적 가치를 함께 지녔다.
호메로스의 개인적인 삶은 신화와 전설에 싸여 있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아나톨리아반도 서부 이오니아 지역의 도시 스미르나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멜레스강의 신, 어머니는 강의 요정 크리테이스였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언어 감각과 예술적 재능을 보였으나 여행 도중 눈병으로 시력을 잃고, 이후 맹인 음유시인으로서 지중해 곳곳을 떠돌며 서사시를 구술했다고 한다.
후원자를 찾지 못한 어려운 시절, 호메로스는 서사시를 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제자인 테스토리데스가 이를 몰래 필사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며 공연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에 분개한 호메로스는 키오스섬까지 직접 찾아가 이를 바로잡았고, 아예 그곳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시를 전수했다. 결국 그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외딴 섬 이오스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를 기리는 무덤이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호메로스를 한 명의 시인이라기보다, 여러 세대에 걸쳐 구술시를 축적하고 정리한 전승 공동체의 상징적 존재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라는 이름은 인류 최초의 문학 정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통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옮긴이 :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지혜를 사랑한다’의 합성어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말에 이끌려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에 정진하게 된 고전학자. 현재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따르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고전 비극, 역사, 철학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2004년 처음 번역 계약을 한 이래 22년 만에 선보인 역작으로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을 재현한 결과물이다.
저서로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천년의 수업』,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화의 신화적 상상력』, 『신화의 숲』, 공저로 『삶이 묻고 고전이 답했다』 등이 있다.
목 차
해제:『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반부: 이타카 바깥의 오뒷세우스
제1부 텔레마코스의 모험
제1권 신들의 회의, 아테나와 텔레마코스의 만남
제2권 텔레마코스의 회의 소집과 모험의 출발
제3권 퓔로스 방문, 텔레마코스와 네스토르의 만남
제4권 스파르타 방문, 텔레마코스와 메넬라오스의 만남
제2부 칼륍소를 떠나 스케리아섬으로
제5권 칼륍소의 섬을 떠나는 오뒷세우스
제6권 스케리아섬, 나우시카아와 오뒷세우스의 만남
제7권 알키노오스 대전으로 들어가는 오뒷세우스
제8권 알키노오스의 환대와 오뒷세우스의 눈물
제3부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
제9권 이스마로스, 로토파고스, 퀴클롭스
제10권 아이올로스, 라에스트뤼곤 식인종, 키르케
제11권 하데스 방문과 넋들과의 대화
제12권 키르케의 예언, 세이렌, 스퀼라와 칼륍디스, 헬리오스의 소 떼
후반부: 이타카 안의 오뒷세우스
제4부 이타카 도성 바깥에서
제13권 이타카 귀환과 오뒷세우스의 변신
제14권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오뒷세우스의 만남
제15권 이타카로 돌아온 텔레마코스
제16권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의 만남
제5부 이타카 도성 안에서
제17권 도성과 대전으로 들어가는 오뒷세우스
제18권 이로스와 오뒷세우스의 결투, 구혼자들의 패악
제19권 복수의 준비와 페넬로페와의 대화
제20권 조롱과 모욕을 견뎌 내는 오뒷세우스
제6부 복수와 재회, 귀향의 완결
제21권 구혼자들의 활쏘기 시합
제22권 오뒷세우스의 복수와 구혼자들의 최후
제23권 대전의 정화, 페넬로페와의 재회
제24권 라에르테스와의 재회, 구혼자 가족들과의 충돌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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