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삶을 문학으로 복원하다
북파공작원 출신 나이주 작가가 북파공작원들의 삶을 소설로 썼다. 장편소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는 작가가 직접 체험한 공작 세계의 감각을 바탕으로,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적지에 침투하고도 임무가 끝난 뒤에는 존재마저 부정당해야 했던 비정규 공작원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소설은 1994년 11월 29일부터 12월 12일까지, 세 명의 공작원이 북한 현리 비행장의 VX 화학탄 저장시설을 폭파하고 귀환하는 14일간을 따라간다. 북한군 공병 출신으로 북한을 탈출한 강성, 아버지는 납북되고 어머니는 지뢰 사고로 잃은 덕유, 고정간첩이었던 아버지가 자수한 뒤 부모를 잃은 고산. 서로 다른 분단의 상처를 지닌 세 사람은 지뢰밭과 철책, 감시초소를 뚫고 북한 깊숙이 침투한다.
국가에 속해 있지만, 국가에 속할 수 없는 존재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작 현장의 구체성이다. 비트 구축과 흔적 제거, 지뢰와 각종 장애물 개척, 지형과 식생을 이용한 방향 탐지, 적진 관찰과 암호 송수신, 침투와 철수 과정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문학평론가 정선태 교수는 작품 해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에서 이러한 묘사가 “체화한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북파공작원의 특수한 세계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국가가 필요할 때는 전사였지만 임무가 끝난 순간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통해, 한 인간이 국가와 이념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어떻게 소모되고 지워지는지를 묻는다. 죽음의 공간인 지뢰밭이 남과 북 모두에게 쫓기는 강성에게 오히려 마지막 은신처가 된다는 제목의 역설도 여기에서 생겨난다.
국가는 한 인간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마지막 순간 강성은 국가가 명령한 죽음을 거부하고 자신의 마지막 걸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한다. 정선태 교수는 이를 “개인의 사소하지만 위대한 결단”이라고 평한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는 북파공작원의 무용담도, 비밀공작의 세계를 폭로하는 르포도 아니다. 북파공작원이 자신의 경험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밀어 올려, 국가가 필요로 했으나 끝내 이름을 지워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소설이다.
“이념의 광기와 국가의 폭력에 짓눌려 그림자처럼 숨죽이고 살아온 강성의 삶, 고산과 덕유의 시신을 지뢰밭에 묻어주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려 했던 강성의 힘겨운 발자국이 어떻게 하면 헛되지 않을 수 있을까”(본문 338쪽 중에서). 국가가 명령한 죽음을 거부하고 자기 발로 마지막 방향을 선택하는 강성의 걸음을 정선태 교수는 “개인의 사소하지만 위대한 결단”이라고 평한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는 기록에서 사라지고 숫자로 남은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소설이 아니라, 그 숫자 하나하나를 다시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의 삶으로 되돌려놓으려는 진혼곡이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 작가 미니 인터뷰
1. 북파/남파 공작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인식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더불어 사실을 기록하는 르포나 아카이빙으로서의 소설이 아닌,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며 쓰셨는데요. 이러한 방식에서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실지요?
북파공작원은 군번도 계급도 없는 채 적지에 침투해 첩보를 수집하거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요인을 제거·납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비정규 공작원들입니다. 국가를 위해 존재했지만, 정작 공식 기록에서는 쉽게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낸 평화협정이 아니라, 교전 당사자들이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다시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맺은 군사협정입니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두고 그곳에서의 적대행위를 금지했으며, 허가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정전 이후에도 남과 북은 상대 지역에 사람을 침투시켜 첩보를 수집하거나 군사적 공작을 수행했습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때 생깁니다. 휴전은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교전이 중지된 상태이고, 국제법상 한쪽의 중대한 휴전 위반은 상대방에게 협정을 폐기하거나 긴급한 경우 적대행위를 재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자신이 공작원을 보내 적지에 침투시키고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비밀작전 하나를 시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전 체제 자체를 뒤흔들고 다시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공작은 국가의 필요로 수행되면서도, 정작 국가는 그 존재와 임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모순을 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순의 가장 어두운 곳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면서도 국가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공작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모순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르포나 아카이빙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기록은 사실을 남길 수 있지만, 침묵과 삭제,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삶까지 복원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그 기록의 빈자리를 문학이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록에서 지워진 인간의 고통과 존엄을 상상력으로 되살리는 것. 저는 그 일이야말로 소설만이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몫이라고 믿었습니다.
2. 강성은 북한 체제의 폭력에서 탈출해 남한의 공작원이 되지만, 마지막에는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제거 대상이 됩니다. 이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만, 정작 국가로부터 잊히거나 부정당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그들의 상처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상흔을 치유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국가는 개인 위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결국 개인들의 삶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이름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숫자로 환원됩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 폭력이 남기는 가장 본질적인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강성을 비롯한 작품 속 인물들의 상처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았지만, 임무가 끝난 뒤에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습니다. 살아 돌아와도 기록되지 못하고, 죽어도 애도 받지 못하는 삶.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 깊은 상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국가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공로를 기록하고, 실종자와 사망자를 끝까지 찾아야 하며,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가 관련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희생자를 찾는 책임을 유족에게 사실상 떠넘기는 현재의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유족들은 당사자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에게 먼저 증명하고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다시 피해자에게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국가가 책임지고 치유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국가를 위해 일했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가가 그들을 더 이상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3. 마지막 장면에서 강성은 독 캡슐을 삼키지도, 북으로 귀순하지도 않고 다시 남쪽을 향해 걷습니다.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지는 이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선택은 국가에 대한 갈망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국가를 고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육체로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강성의 마지막 걸음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주제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총알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강성은 남으로 향합니다. 북에 투항한다면 당분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남쪽의 지시대로 독 캡슐을 삼킨다면 자신의 존재를 말끔히 소거하는 데 동의하는 셈이 됩니다. 강성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를 기다리거나 환영해 줄 이 하나 없는 남쪽을 향해 자기 발로 걷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걸음이 국가를 향한 귀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정해 놓은 죽음의 방식마저 거부하는 한 인간의 마지막 선택에 가깝습니다. 북에 자신을 맡기지도 않고, 남이 명령한 방식으로 자신을 지우지도 않는 것. 비록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어디를 향해 걸을 것인지만큼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가 남으로 향하는 데에는 덕유와 고산의 발자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강성에게 덕유와 고산은 국가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국가는 제 역할을 다한 강성에게 총구를 들이댑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의 든든한 후방이었던 덕유와 고산의 발자취가 거기에 있고, 그들은 국가가 되어주지 못한 세계가 되어 강성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저는 강성의 마지막 걸음을 국가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국가가 끝내 빼앗지 못한 한 인간의 존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육체는 총탄 앞에서 쓰러지지만, 어느 쪽에도 자신의 존재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마지막 걸음은 패배가 아닙니다. 국가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강성은 자신의 마지막 걸음으로 되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실제 경험이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인물을 소설화할 때, 끝내 쓰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감춘 이야기도 있으셨나요? 또는 인물 및 상황에서 원래 구상한 것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었는지요? 작품 집필 비화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속속들이 기록하는 것은 르포의 몫일 것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극한의 훈련과 이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가해진 체벌 등 독자의 눈길을 끌 만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보안상 드러낼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밝힐 수 있음에도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덜어낸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 덜어낸 것이 강성의 과거입니다. 강성은 오사카에서 북한 안변군으로 이주한 재일교포입니다. 북한과 조총련의 ‘지상낙원’ 선전을 믿고 북한으로 건너간 9만 3천여 명의 재일교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향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고, 북한에서는 감시와 차별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투쟁아파트’ 건설과 그 안의 삶을 통해 강성이 겪어야 했던 가난과 소외, 그리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삶을 좀 더 깊이 다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소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14일간의 적지 임무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이 작품의 중심에서 자꾸 벗어났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작품 전체를 흔든다면 덜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당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습니다. 쓰지 않는 것 역시 소설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다시 느꼈습니다.
고산과 강성, 덕유는 모두 우리 시대가 낳은 아픈 손가락들입니다. 그중 가장 아픈 손가락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덕유를 꼽겠습니다. 태풍 사라의 비극을 겪고 집단 이주한 철원에서 아버지는 북한군에 납치되고, 어머니는 지뢰를 밟아 죽습니다. 그리고 덕유 자신마저 귀순 과정에서 총탄에 찢겨 시신조차 온전히 남지 못합니다. 저에게 덕유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만은 아닙니다. 시대와 분단이라는 거대한 힘에 삶이 휩쓸렸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덕유를 쓰는 일은 한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삶의 밑바탕에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5. 작품에서 남과 북은 서로 적대하지만, 개인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폐기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기도 합니다. 작가님께서 비판하고자 한 것은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모든 국가 권력의 본질일까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남과 북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이미 분단이 오래 지속된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견해도 있으실 듯한데요. 전쟁의 상흔이 통일로 인하여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개개인에게 국가는 보호자인 동시에 가장 압도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남과 북의 체제는 분명 다릅니다. 북한이 국가와 집단의 목적 아래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인 욕구까지 강하게 통제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그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쟁과 분단, 안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가 ‘공동체를 보호한다’라는 명분으로 개인을 수단화해 온 역사는 남과 북 모두에게 있습니다. 국가가 필요할 때는 국민이고 전사이지만, 국가에 불편한 존재가 되는 순간 한 인간은 이름을 잃고 기록에서조차 지워지는 숫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인간을 도구화하는 모든 국가의 본질을 하나로 규정하기보다, 국가가 한 인간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최인훈 님의 소설 ‘광장’은 이 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명준은 개인의 자유로운 내면인 ‘밀실’과 공동체적 삶인 ‘광장’이 서로 통하는 세계를 갈구합니다. 그러나 남에서는 광장 없는 밀실을, 북에서는 밀실 없는 광장을 발견합니다. 결국 어느 쪽에서도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찾지 못하고 제3국을 선택합니다.
강성 역시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이명준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다릅니다. 강성은 자신에게 총알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남으로 향합니다. 그것은 남한이라는 국가를 선택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덕유와 고산의 발자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살아서는 그의 든든한 후방이었고 죽어서도 그를 살아 있게 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쟁과 분단의 상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다고 분단의 반대말인 통일이 자동으로 그 상처의 치료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가 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사라진 기록이 저절로 복원되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통일이라는 거대한 대의를 위해 또다시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비판해 온 국가의 논리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발밑에는 지뢰가 있습니다. 실제 지뢰도 있지만 기억 속의 지뢰, 가족사의 지뢰, 국가가 감춘 기록의 지뢰, 남과 북이 서로에게 남긴 증오와 공포의 지뢰도 있습니다. 통일은 군사분계선을 없앨 수는 있어도 그 지뢰들까지 저절로 제거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통일을 원합니다. 더 이상 분단이 고착화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통일은 영토를 하나로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과 북 모두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을 돌아보고,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유해를 발굴하고, 가족에게 진실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피해자를 ‘영웅’이나 ‘반역자’라는 국가의 언어에서 꺼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되돌려놓는 일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발밑과 마음속에 묻힌 지뢰를 하나씩 제거하는 과정, 저는 그것이 통일보다 먼저 시작되어야 할 화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민족보다 한 인간의 삶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통일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6.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장면이나,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으신지요? 또는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를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전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강성과 덕유와 고산은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들의 삶과 궤를 같이하는 수많은 실제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해 이름도 계급도 없이 임무를 수행했고, 돌아오지 못하거나 돌아온 뒤에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오랫동안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살아 돌아왔다는 숫자로 기억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한 사람의 생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강성의 마지막 걸음을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는 북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명령받은 대로 독 캡슐을 삼키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총알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덕유와 고산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남쪽을 향해 걷습니다. 국가는 그의 삶을 이용했고, 그의 죽음까지 명령하려 했지만, 마지막 걸음의 방향만큼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걸음이 영웅적 항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한 인간으로 남으려는 아주 작고 처절한 몸짓에 가깝습니다. 국가와 이념이 한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인간이 끝내 지키고자 하는 어떤 것까지 모두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를 읽고 독자들이 분단이나 북파공작원이라는 역사적 사실만을 기억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 역사 뒤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록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이름을 잃었다고 해서 삶까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지워진 역사를 모두 복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때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겨놓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한 사람이라도 책을 덮은 뒤 강성과 덕유와 고산의 이름을 잠시 기억해 준다면, 저는 그것으로 이 소설이 해야 할 몫의 어느 정도는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소개
나이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검정고시와 국어국문학 학위를 취득했다. 군 복무 시절 특수임무를 수행하며 분단의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는 사라진 이름들을 기록하기 위해 쓴 첫 장편소설이다. 현재는 7년간의 양봉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소란』을 쓰고 있다.
목 차
프롤로그 사선(死線)에서
1장 제인 러셀의 가슴으로
2장 지하 만리장성 오성산
3장 도마복음과 세포군
4장 현리 비행장
5장 VX, 소돔과 고모라
6장 컴포지션 동굴
7장 죽음의 위에서
8장 죽음의 아래에서
9장 짧은 해후
10장 고암산과 역곡천
11장 지뢰밭에 잠들다
12장 이름이 불리다
13장 사울 3, 3, 3!
14장 Time in a Bottle
작가의 말
작품해설_정선태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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